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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

[쿠니카게] 더위를 이기는 법

*쿠니카게 전력 60분 참여글입니다. (주제 : 여름)

*두 사람이 형제입니다.

*커플링 요소 少





   달라붙지 좀 마. 짜증 가득 섞인 목소리로 아키라가 말했다. 토비오는 그 소리에 미간을 확 구기고는 신경질적으로 등을 돌렸다. 시바, 누군 좋아서 붙는 줄 아나. 들릴 듯 말 듯 중얼거렸지만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느즈막한 오후임에도 찌는 듯한 열기가 가득 찬 날이었다. 저 멀리 하늘을 감빛으로 물들이며 저물어 가는 노을, 이따금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 또 다 된 밥솥에서 나는 고소한 쌀내음도 기분 좋은 것들이었지만 후덥지근한 기온만큼은 그렇지 못했다. 오히려 그들의 기분을 완전히 망치고 있을 뿐이었다. 토비오는 돌아눕자마자 나시 밖으로 드러난 오른 팔이 바닥에 쩌억 붙는 것을 느꼈다. 찝찝하고 불쾌했다.


   그렇게 토비오는 오른쪽을 향한 채, 아키라는 반듯하게 누운 채로 한참이고 누워있었다. 바닥에 아무렇게나 던져진 부채를 집어 들고 각자 휘적휘적 흔들어댔지만 별 소용없었다. 저녁 먹을 시간이 되었지만 두 사람 다 까딱하기도 싫은 눈치였다. 그렇게 삼십 분, 한 시간이 막 지나갔다. 어느 새 밖은 어두침침해져 있었다. 토비오는 고개를 슬쩍 들어 눈을 감고있는 아키라를 돌아보았다.




   “야. 자?”

   “...”

   “자냐고.”

   “어.”

   “안 자잖아.”

   “어쩌라고...”




   하루종일 누워있었으니 잠이 올 리는 없었을 것이다. 대신 아키라의 목소리에는 귀찮음이 뚝뚝 묻어났다. 말간 이마 위로 땀 한 줄기가 느릿하게 내려오고 있었다. 땀이 원체 없는 인간이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이런 날엔 쟤도 어쩔 수 없구나- 하고 토비오가 실없는 생각을 했다. 아키라는 잠깐의 대화도 힘겨웠던 듯 입을 꾹 다문 채 가만있었다. 토비오는 다시금 입술을 열었다.




   “엄마랑 아빠 올 때까지 며칠 남았댔지.”

   “...”

   “며칠 남았냐니까?”

   “몰라... 일주일 쯤 남았겠지.”




   건성으로 돌아온 대답에 토비오는 다시 머리를 바닥에 붙였다. 방 안이 온통 어두컴컴했지만 굳이 불을 켤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렇게 또 삼십 분, 둘 사이에는 적막만이 맴돌았다. 결국 참다 못한 토비오가 자리를 박차고 벌떡 일어났다. 아키라는 그러거나 말거나, 미동도 않은 채 죽은 듯이 누워있었지만.




   “야.”

   “...”

   “마당에서 목욕하자.”




   ‘목욕’ 이라는 단어에 아키라의 눈꺼풀이 번뜩 뜨였다. 그리고는 환경에 적응하려는 듯 눈을 두어 번 끔뻑이다, 누워 있는 자신의 옆에 앉아 자기를 내려다보는 토비오를 올려다보았다. 좋아. 그리고는 덩달아 벌떡 일어난다. 덕분에 바닥에 붙어 있던 팔과 다리에 바닥 무늬를 따라 파인 자국이 드러났다.


   둘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방에서 나와, 바깥 창고에 처박아둔 커다란 고무 대야를 질질 끌고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마당 구석에 놓인 수도 꼭지를 돌려 물이 콸콸 쏟아지는 호스를 대야에 갖다댔다. 얄팍하게 쌓였던 먼지가 쉽게도 쓸렸다. 그것들이 물에 동동 뜨는 동안 둘은 헐레벌떡 옷을 벗어던지기 시작했다. 얇은 나시와 반바지, 그리고 속옷까지 벗어내리는 손은 거침없었다. 어차피 높은 담과 대문이 있으니 누가 볼 일은 없었고, 그래봤자 희미한 달빛만이 둘의 살을 비출 뿐이었다. 토비오보다 먼저 마루에 옷을 던져놓은 아키라는 먼지 떠다니는 물을 혼자 솨아아, 비워내고는, 다시 호스를 넣고 물을 틀었다. 그 사이 토비오도 옷을 마루에 던져놓고 온 참이었다.


   물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가득 차올랐다. 흘러넘칠 듯 넘실거리는 모습에 토비오는 무심코 몸을 부르르 떨었다. 밖이 덥긴 했어도 물 안은 차가울 것이었다. 들어가기 전 어쩔 수 없이 몸에 힘이 가득 들어간다. 토비오가 그러는 사이 아키라는 이미 발 한 쪽을 담그고 있었다. 차갑긴 차가웠다. 그래도 여태 버텨온 더위를 생각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그는 나머지 발 한 쪽도 넣은 뒤, 가벼운 심호흡과 함께 풀썩 몸을 구겨넣었다.




풍덩-




   넘칠 듯 말 듯 아슬아슬하게 찼던 물들이 쿠니미가 자리에 앉자마자 양 사방으로 튀었다. 덕분에 토비오의 마른 다리도 흠뻑 젖었다. 아 차거! 토비오는 작은 비명과 함께 호다닥 안으로 따라 들어갔다. 다시 한번 물이 흘러넘친다. 작은 바다 속 해일이라도 왔다간 듯 대야 안이 계속해서 떠오르고, 가라앉고를 반복했다. 그렇게 둘은 무릎을 모아 손깍지로 다리를 고정시킨 채, 서로를 마주 보았다. 푸하하! 갑작스럽게 터진 토비오의 호탕한 웃음 뒤로 아키라의 비실거리는 웃음소리도 들렸다. 맑은 달빛 아래 덜 자란 두 소년들의 피부가 부드럽게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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