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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

[쿠니카게ts] 무뢰한의 말로

WARNING : 주인공에 대한 음담패설(성희롱), 유혈, 잔인한 대사 주의.

*글쓴이는 절대 그 어떠한 성희롱도 옹호하지 않습니다.(옹호하는 내용도 없음)

 

 

BGM : 영화 「하녀」 OST, 김홍집 - Innocence

*오른쪽 마우스 클릭 후 연속재생을 눌러주세요

 


 

 

   카게야마. 나 어때 보여?



   화장실에 들어오자마자 문을 잠그더니 엉뚱한 질문을 하는 쿠니미였다. 카게야마는 그의 얼굴만 뚫어져라 쳐다보고는 당최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다시 봐. 힐난하는 목소리가 낮게 퍼진다. 카게야마는 그제야 세 걸음 물러나 그를 찬찬히 수색하듯 몸 전체를 보기 시작했다. 전체적으로는 흰데 가장자리는 연한 분홍색으로 물든 귀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 다음은 갸름하게 빠진 턱선, 마른 쇄골, 힘없이 늘어진 붉은 리본. 치마로 내려가면서까지도 새삼 검은색 교복이 참 잘 어울리는구나, 와 같은 생각만 떠올렸다. 그리고 치마의 주름을 따라 무릎까지 시선을 옮겼을 때, 카게야마는 아! 탄성을 내지를 수 밖에 없었다.

   곧고 마른 다리에서 검붉은 줄기 하나가 내려와 있었다. 그것은 치마 안쪽부터 시작되어 허벅지를 타고 무릎 넘어서까지 내려오는 중이었다. 뭐, 뭐야? 잔뜩 당황한 카게야마를 보고도 쿠니미는 별 말 없이 지켜보기만 했다. 처음에는 뭐가 뭔지 잘 몰라 허둥대던 카게야마는 뒤늦게 그것이 생리인 줄 알아채고 서둘러 칸에 들어갔다. 그리고는 얇고 큰 대형휴지를 손에 둘둘 말아 두툼해진 손으로 다시 쿠니미 앞에 섰다. 그리곤 망설임 없이 그의 앞에 쭈그려 앉았다. 한 묶음으로 묶었음에도 긴 머리칼이 고개를 푹 숙이자 바닥에 닿일 것만 같았다.

   쿠니미 너도 참 이상하다. 이렇게 될 때까지 왜 가만히 있었던 거야? 아래에서부터 핏줄기가 내려온 길을 따라 올라가며 투덜대듯 중얼거렸다. 여전히 위에서는 아무 말도 없었다. 괜히 무안해진 카게야마는 서툰 손길로 열심히 닦는 데에만 열중하기로 했다. 아랫부분은 비교적 깔끔하게 닦였지만, 올라갈수록 자꾸만 살에 자국이 남아 지워지지 않았다.



   "허벅지부터 잘 안 지워져."
   "……."
   "물이라도 뿌릴까?"



   손은 점점 위로 올라가다 치마 안으로까지 들어갔다. 잘 닦이지 않는 곳을 여러번 쓸어올리다 포기하고 완전히 깊숙한 곳까지 들어갔을 때, 별안간 카게야마는 차갑고 뾰족한 무언가가 자신의 손을 살짝 찌르는 느낌을 받았다.



   "아, 따거……!"
   "……."
   "쿠니미, 치마 안에 뭐가……."
  


   한참 늦어. 쿠니미가 카게야마의 이마를 훅 밀어내며 중얼거렸다. 덕분에 뒤로 쿵 넘어진 카게야마가 야! 하며 자신의 엉덩이를 문질렀지만, 쿠니미는 들은 채도 하지 않고 바로 옆에 있던 칸에 들어가 문을 잠궜다. 안에 뭐가 있다니까! 짜증 섞인 외침이 조용했던 화장실을 크게 울렸다.

   쿠니미는 시끄러운 듯 귀를 대충 후비적거리고는 자신의 치마를 위로 홱 걷어냈다. 그러면 아까부터 카게야마가 박박 닦아내 살짝 붉어진 흰 다리와, 핏줄기의 근원이었던 중간 크기의 날카로운 칼이 드러났다. 칼. 치마와 뱃가죽 사이에 여태 끼어있던 것이었다. 쿠니미는 덜그럭 소리가 날 정도로 한꺼번애 휴지를 잡아뜯고는 아직도 날끝에 약간 고인 방울을 스윽 닦아냈다. 더러운 피였다.

   그날 하루종일 카게야마는 쿠니미 뒤만 졸졸 따라다니며 연신 쫑알댔다. 아직 허벅지에 남아있어, 휴지 물에 적셔서 박박 닦아내면 지워지지 않을까? 정작 당사자는 어쩌겠다는 말도 없이 모조리 무시했다. 사실 혈흔이 남아있는 부분은 허벅지 안쪽부터라서 누군가가 볼 가능성이 아주 낮았다. 그럼에도 카게야마는 마치 자신의 다리인 양 신경이 쓰여 뭐 마려운 강아지처럼 굴었다. 결국 앞만 보며 걸어가던 쿠니미는 몸을 홱 틀어 카게야마를 마주보았다.



   "야."
   "어, 어?"
   "너한테만 가르쳐 준 거야."
   "……뭘?"
   "넌 눈치도 없고, 또 내가 제일 좋아하니까."



   그러니까 너한테만 가르쳐 줬다고. 쿠니미의 알쏭달쏭한 말은 카게야마의 궁금증을 하나도 풀어주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금방 입꼬리를 꾸물대기 시작했다. 나 그건 알겠어.



   "내가 제일 좋다는 거지?"
   "……."
   "쿠니미 진짜로? 나 좋아?"



   역시 끝까지 무시당했다.





✝✝✝


  


   쿠니미는 오늘 하루종일 오전에 그가 들었던 말들을 곱씹고 있었다. 쉬는 시간이었다. 최근 바꾼 자리는 남학생들이 쉬는 시간만 되면 모여서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나누는 장소 바로 옆이었다. 덕분에 잠깐의 짬을 이용해 잠을 보충하던 쿠니미에게는 그것이 굉장한 방해였다. 오늘도 잠시 눈을 붙이기 위해 책상 위에 엎드려 눈을 꾹 감았지만, 여전히 시끄러운 목소리들로 인해 정말 잠깐도 잠에 들지 못했다. 이미 짜증은 있는대로 난 상태였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그의 화를 더 돋군 것은, 무리 중 한 녀석이 문득 꺼낸 이름 때문이었다. 쿠니미는 잠을 자기 위해 노력했던 것도 잊고 눈을 번쩍 떴다.



   "야야, 근데 그…… 카게야마 말이야."
   "카게야마?"
   "쉿. 누가 들을라."
   "뭔 얘기를 하려고?"



   시끌벅적했던 그들의 목소리가 갑자기 확 낮아졌다.



   "나 아까 걔 체육복 갈아입으면서 교복 상의 벗은 거 봤거든. 애들 그 안에 티셔츠 입잖아."
   "그렇지……? 근데 왜?"
   "걔 은근…… 가슴 크더라."



   뭐? 걔 완전 말랐잖아! 무리 중 하나가 속삭였다. 



   "아냐. 나도 진짜 깜짝 놀랐어."
   "신기하네……. 되게 의외다."
   "티셔츠 달라붙는 거 진짜 꼴리더라."



   아. 따먹고 싶다.



   콰득. 쿠니미의 입술이 짓이겨졌다. 원체 분한 감정은 잘 느끼지 않는 편이었는데도, 치밀어 오르는 화 때문에 턱이 덜덜 떨릴 정도였다. 온 정신을 지배하는 강한 충동이 쿠니미를 잠식하기 시작했다. 입술 안쪽까지 새어 들어온 피가 혀를 적시는 줄도 몰랐다.

   충동적이지만 확실한 분노는 쿠니미가 빠르게 실행에 옮기는 것을 도왔다. 곧장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며칠 전 가정시간에 쓰고 집에 가져가지 않은 과도 하나를 사물함에서 몰래 꺼냈다. 그리곤 셔츠 소매 밑으로 숨겼다. 차가운 칼날이 어서 누군가의 몸으로 들어가 잔뜩 난도질 하고 싶다고 몸부림 치는 것만 같았다.





✝✝✝





   쿠니미가 선택한 시간은 체육 시간이었다. 하도 전부터 아프다는 핑계로 자주 빠져 있었어서, 이젠 그가 교복을 입고 운동장 구석에 앉아있어도 뭐라 하는 사람이 없었다. 오늘은 피구 연습을 하는 날이었다.

   성별이 섞인 채로 팀이 나눠져 쿠니미를 제외하고는 쉬는 이가 없었다. 오전에 카게야마에 대한 음담패설을 늘어놓은 녀석도 마찬가지였다. 칸죠. 성만 어렴풋이 떠올랐다. 그 시간 내내 쿠니미의 눈은 그 소년에게서 한시도 떨어지지 않았다.

   꽤 오랜 경기 끝에 칸죠가 물을 뚝뚝 흘리며 쿠니미가 앉아있던 그늘 및 벤치로 왔다. 나머지 애들은 수돗가에 뛰쳐가 푸하, 하는 소리와 함께 머리를 흠뻑 적시고 있었다. 아마 그가 가장 먼저 열을 식히고 온 듯 했다. 그는 혼자 앉아있었다. 기회였다.

   쿠니미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가 앉은 벤치로 조용히 다가갔다. 그때까지도 턱으로 흐르는 물방울을 닦아내던 칸죠는 쿠니미가 아주 가까이 오고 나서야 그를 알아챘다. 어, 쿠니미?



   "칸죠. 나 뭐 하나 부탁해도 될까?"



   잘 보이지 않던 사근사근한 미소까지 곁들이니 칸죠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무슨 부탁인데?"
   "선생님이 애들 연습하는 동안 창고 정리를 부탁하셔서……. 너도 알다시피 내가 좀, 튼튼한 편은 아니잖아."
   "아- 그런 거라면 문제 없어. 지금 바로 가면 되는 거야?"



   응. 이미 많이 지쳤을 텐데 고마워. 칸죠는 힘도 좋을 것 같아서, 꼭 부탁하고 싶었어. 아름다운 미소와 사람을 띄워주는 말. 그것도 말수는 적지만 예쁘기로 소문난 쿠니미가 한 부탁이었다. 칸죠의 어깨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혹시 저에게 관심이 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웬만해선 다른 애들에게 말을 잘 걸지도 않은 애였으니까, 하고 나름대로 그럴 듯한 근거도 만들기 시작했다.

   칸죠는 창고로 걸어가는 내내 쿠니미에게 쉴 새 없이 주절댔다. 선생님은 왜 나같이 힘 좋은 앨 두고 널 시킨대, 생각 짧다니까-! 대부분은 자신을 어필하려는 말들이었다. 쿠니미는 소리 없이 미소만 지으며 가만히 들어주었다. 그에 칸죠는 자신의 이야기가 먹힌다는 생각에 더욱 재잘재잘 떠들어댔다. 쿠니미의 눈에는 그저 그가 우스워보였다.

   창고에는 금방 도착했다. 칸죠는 자신이 먼저 들어가겠다는 듯 문을 열어재꼈고, 그 때문에 안에 있던 곰팡이 냄새가 훅 밀려왔다. 칸죠는 그 냄새에 쿨럭이며 손울 휙휙 내저었다. 다만 쿠니미는 덤덤한 얼굴로 따라들어와 문을 철컥 잠글 뿐이었다. 멍청한 소년은 쿠니미의 행동에 금방 얼굴이 벌게졌다. 문을 굳이 잠글 이유가 없었는데, 혹시 그가 자신에게 비밀스러운 고백이라도 할 거라고 생각했는지. 칸죠는 큼큼거리며 다시금 입을 놀렸다.



   "……그나저나 상상도 못했어. 도와줄 사람으로 나를 찾았다니 말이야."



   그는 눈을 마주하고 말하기가 민망했는지 뒤돌아 선 채 말했다. 어떻게든 분위기를 만들어낼 생각이었다.



   "혹시 나를 찾아온 다른 이유가 있는 거야? 예를 들면…… 나를- 크윽!!!"



   칸죠의 말이 순간 이어지지 못한 채 끊겼다. 왜냐하면, 그의 등에, 서늘하고 날카로운 무언가가 깊숙이 파고들었기 때문에. 그는 입을 쩌억 벌린 채 꺼억꺼억대기 시작했다. 칼을 뽑기 위해 힘겹게 상체를 돌리면 금방 뒤에서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거 하려고."
   
   "부른 건데?"



   동시에 칼이 뽑혔다가 이번에는 허리를 찔러온다. 소년의 흰자는 터진 실핏줄로 인해 붉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입가로는 침이며 피며, 온통 더러운 것들이 흘러나온다. 바짓단 아래로 누런 물이 질질 새기도 한다. 반면 쿠니미의 얼굴에는 잔잔한 미소만이 걸려있을 뿐이었다.

   칸죠는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어떻게든 칼을 뽑고자 손을 허우적댔지만, 뒤에서 가하는 힘-마른 몸에서 나온 것이라곤 도무지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다-에 그저 앞으로 고꾸라질듯 밀려날 뿐이었다. 남자애들은 멍청해. 얼핏 그런 말이 들린 것 같기도 했다. 결국 창고 벽 끝까지 밀려난 그는 얼굴이 벽에 짓눌린 채 가쁘게 숨만 내쉬었다. 쿠니미는 쯧, 하며 까만 세라복에 물 튀긴듯 묻은 피를 보더니 칼자루만 보일 정도로 깊게 박아둔 칼을 한번에 훅 뽑아냈다. 동시에 아악!!! 하는 칸죠의 비명이 창고를 울렸다. 그 소리에 인상을 있는대로 찌푸린 쿠니미가 울부짖는 그의 머리채를 덥썩 잡아 자신을 보게 했다.



   "너 카게야마 따먹고 싶댔지?"
   "무, 쿨럭! 무슨……!!!"

   "난 네 후장을 도려내고 싶어."



   이걸로. 쿠니미가 칸죠의 눈 앞에 피로 칠갑된 칼을 흔들어보이며 말했다.



   "그래도 돼?"



   칸죠 토모스케의 악 받친 고함소리가 밖으로 새어나가지 못한 채 창고 안을 가득 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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