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RNING : 사망, 종교적 소재 有
*신부 쿠니미 아키라 X 악마 카게야마 토비오
BGM : 영화 '악마를 보았다' OST, 모그 - I Saw The Devil (Pia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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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겨운 내가 기도원을 잠식했다.
흐드러지게 피어있던 붉은 장미들은 흰 액체로 온통 젖어 있었으며, 하나같이 죽은 듯 고개를 수그리고 있었다. 개중에는 벌써 잎 끝자락이 너덜해지는 것도 있었다. 마치 흰 액체가 생명을 한없이 빼앗아가는 듯. 장미 뿐만이 아니라 그곳에 있던 모든 생명체가 그러했다. 장미덩쿨 한 중간에 위치한 두 사람, 아니 두 개체를 제외하고는.
검은 신부복을 입은 이는 땀을 비오듯 흘리고 있었다. 이마부터 시작해 턱까지 흘러흘러 마침내 아래로 떨어진 물방울은 저가 잡고 있는 또다른 발등에 떨어졌다. 핏기 없이 새하얀 것이, 같은 사람의 것이라 보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또 인간과 다른 점이 있다 하면, 그 발등 한 중간에 뚫린 커다란 구멍 사이로 흰 액체가 콸콸 쏟아져 나오고 있다는 것이었다. 근방의 생명을 모조리 말살하는 물질의 정체는 그곳으로부터였다. 신부는 더럽지도 않은지 그 양 발목을 움켜쥐고 다 시든 잔디 위로 질질 끌고있었다. 손 하나 까딱하지 못한 채 엎어진 상태로 힘의 방향에 따라 끌려가는 ‘그것’은 마치 인간과도 비슷해 보였다. 그것도 아주 아름다운. 또 고결한. 그 무엇 하나 걸치지 않은 몸은 이보다 더할 수 없을 정도로 창백했다. 잡혀 끌려가는 양 다리는 가느다랬으며, 그 위로 그나마 살이 오른 엉덩이는 부드러운 피부를 드러내 보는 이로 하여금 눈길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또 예쁘게 들어간 허리하며, 골격은 있지만 어쨌든 마른 어깨까지. 신부는 그것의 새카만 뒷통수를 보며 가슴 속이 벅차오름을 느꼈다.
그것은 사랑이었다. 또는 신. 실은 악마이기도 했다. 쿠니미 아키라-신부-에게는 그러했다. 사실은 그것이 무엇이든 상관 없었으리라. 어떤 모습을 했건, 무슨 일을 하건 간에 사랑했으리라. 쿠니미는 성당의 지하실 문 앞까지 그것을 끌고 와 안으로 들어가기 전 누워있는 그것을 억세게 끌어안았다. 사랑해. 달콤한 목소리로 고백을 하며 입을 맞추는 것 또한 잊지 않으며. 그리곤 벌떡 일어나 급하게 오래된 열쇠를 품속에서 꺼냈다. 지하실로 들어가는,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열쇠였다.
열쇠를 돌리고 묵직한 나무문을 열자,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어둠이 그를 맞이하고 있었다. 쿠니미는 또다시 품을 뒤져 성냥 한 갑을 찾아냈고 입구 바닥에 놓인 랜턴에 불을 붙였다. 다시 그것이 있는 곳으로 돌아온 그는 이번에는 아예 그것을 들어올렸다. 검은 사제복이 그것의 피로 하얗게 얼룩져갔다.
품에는 그것을 들고, 무릎밑을 받친 손은 랜턴마저 들었다. 누가 보았다면 위태로울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그것은 원래도 가벼운 체형이었으며, 영혼이 사라져 일정량이 더 가벼워져 있었다. 그것의 영혼량은 꽤 무거운 것이었기에. 그래서 그는 그 축축하고 어두침침한 지하 복도를 걸어가는 와중에도 미끄러지거나 그것을 떨어뜨리는 법이 없었다.
얼마 안 가 복도 끝에 도착한 쿠니미는 무릎을 굽혀 랜턴을 바닥에 내려둔 뒤, 미래 꺼내둔 열쇠를 그것의 목을 받치고 있던 손으로 옮겨 문을 열었다. 끼익- 거리는 스산한 소리와 함께 몇 백년이나 닫혀있던 문이 묵직하게 열렸다. 신부는 방 입구에 그것을 내려놓은 뒤, 랜턴을 다시 집어 들어 방 안 입구의 벽에 걸었다. 그나마 입구 부근이 흐릿하게 보였다. 그는 다시 성냥에 불을 붙였다. 방에 깨진 랜턴이 하나 더 있었으므로 그곳에도 불을 붙이기로 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 또한 반대쪽 벽에 걸어놓자, 드디어 좁은 방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방의 중심에는 예수를 안은 성모 마리아의 석고상이, 그리고 그것을 둥그렇게 둘러싼 초들이 위험한 냄새를 풍기며 자리잡고 있었다. 그는 그 수 많은 초에 아까 켜둔 성냥 불을 하나하나 붙이기 시작했다. 그러는 내내 입은 쉼없이 기도문을 읊어댔다. 정중하고 깔끔한 몸짓이 진정으로 숭고한 믿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 믿음이 무엇을 향한 믿음인지는 비밀이었지만.
한참이나 불을 붙이던 그가 마지막 초까지 마무리하고 나서, 다시 입구로 가 그것을 품에 안아올렸다. 그리고는 석고상의 정면으로 가, 차례로 무릎을 꿇은 뒤 가만히 눈을 감았다. 이제 모든 준비는 끝난 것이다.
✝ ✝ ✝
“쿠니미 아키라.”
창문에 걸터앉은 카게야마 토비오가 장난스레 그를 불렀다. 네가 뭘 생각하는지 알아. 거부하지는 않을게, 그게 네가 날 사랑하는 방법이잖아. 기분 나쁘게 킬킬대며 쫑알대는데도 쿠니미는 조용히 종이에 무언갈 끄적이고 있었다. 카게야마는 아랑곳하지 않고 창문에서 내려와, 이제는 아예 그의 옆으로 다가섰다.
“언제 할 거야? 그거.”
“…….”
“해 주고 싶은 게 있어서 그래.”
오랜만에 진지한 목소리로 말하자 쿠니미가 쓰던 펜을 든 채 멈칫했다. 종이에는 사임에 대한 내용과 그의 도장이 담겨있었다. 그가 저의 목소리에 드디어 반응한 것을 알아챈 토비오는 조금은 슬픈 얼굴로 쿠니미에게 부탁했다.
“따뜻한 물을 받은 대야를 가져다 줘.”
쿠니미는 그와 아직 작성 중인 서류를 잠시 번갈아보고는 이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유는 저도 몰랐지만 가져오라니 가져오는 것이었다. 카게야마의 그런 얼굴은 보기 드무니까.
금방 데운 물이 담긴 대야를 가져온 그는, 카게야마의 손짓에 따라 바닥에 내려놓았다. 뭘 하려고? 보면 알아. 의자에 앉아봐. 그의 지시에 따라 얼떨결에 자리에 앉은 쿠니미는 자신의 구두를 벗겨내는 손에 그저 몸을 맡기기로 했다. 하얗고 매끈한 손이 쿠니미의 흰 양말을 모두 벗겨냈다. 그리고는 그 물 안에 두 발을 담그게 했다. 손은 물 안에 들어가 투명해졌고, 부드럽게 쿠니미의 발을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손을 옴폭하게 굽혀 물을 담았고, 젖지 않은 부분 위에 쏟아주었다. 구두만 신고 다녀 거칠해진 뒷꿈치와 복숭아 뼈를 하염없이 쓸어주었고, 온 정성을 다해 씻겨주었다.
다만, 슬픔을 참지 못한 쿠니미 아키라의 눈물이 대야 안으로 떨어졌다. 한 방울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곧 그칠 줄을 모르고 한없이 떨어뜨리더라. 카게야마는 그제야 발만 보고 있던 고개를 들어올려 그와 마주했다.
그것이 웃었다.
✝ ✝ ✝
날카로운 은말뚝이 심장을 파고든다. 어쩌면 그 자신도 악마였으리라 생각한다. 신부복을 입고, 겉으로는 열심히 신도들의 고해성사를 들어주는 척. 사실은 악마새끼와 붙어먹어 난잡한 일을 벌이고 있는. 주제에 맞지도 않게 악마라는 것과 음탕한 짓을 하는. 사랑한다고 지껄이는.
악마는 평화로운 인간의 세계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그리고 그런 악마와 사랑을 한 자신도 결코 깨끗하지 않았다. 그러나 변명하고 싶었다. 악마가 아니에요. 저의 신이십니다. 제가 믿는 예수세요. 그러나 자신의 소임도 정확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을 다할 방법이 무엇일까. 쿠니미는 카게야마의 두 손과 발등에 말뚝을 박아 넣음으로써, 자신의 심장에 쑤셔넣음으로써 일을 해냈다.
붉은 촛불에 비친 마리아의 얼굴이 검게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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