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팔로워 기념 이벤트로 론테님께 드리는 리퀘글입니다.
*동양풍의 가상 배경이지만 조선시대의 요소를 섞었습니다.
*부엉이 수인 아카아시 X 까마귀 수인 토비오
BGM : 영화 '돈의 맛' OST, 김홍집 - Los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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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그 아이를 처음 마주한 것은 오 년 전의 어느 겨울날이었습니다. 그 해의 끝자락이자 다음 해의 시작을 위해 신사에 가 참배를 올리고 돌아오는 길이었어요. 저의 거처는 산골짜기 중에서도 골짜기였기에, 폭설을 헤치고 나아가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좁지만 선명히 드러나있던 산길은 두꺼운 눈에 갇혀 어디가 길인지 당최 가늠하기 어려웠지요. 그래서 신사로 가는 길에 지팡이로 깊게 파놓은 흔적들을 따라 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다행히도 제가 지나갈 적에는 그것들이 남아있었습니다만, 조금만 더 늦었더라면 다시 묻혀있을 것이 뻔했어요. 그래서 다음 번에는 붉은 끈을 나무마다 걸어야겠다,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눈과의 고군분투를 하며 겨우 집 앞까지 다다르자, 온통 흰 것들만이 가득한 마당에서 유일히 어둡고 외로이 있는 것을 보게되었습니다. 저 혼자서만 새카만 모습으로 눈 위에 누워있었기에 못 알아차릴 리가 없었지요. 저는 집 안으로 들어가려던 발걸음을 돌려 그것에게로 다가갔습니다. 그것은 그 새찬 눈보라 속에서, 어디로도 가지 못한 채 그저 벌벌 떨고만 있었습니다. 머리와 날개에 흰 눈을 잔뜩 묻힌 모양이라 얼마 가지 않아 묻혔을 게 눈에 선했습니다. 저는 조심스레 그것을 손에 담아 품에 안아보았습니다. 미약하게나마 떨고 있는 것이 분명 운명한 것은 아닌듯 했습니다. 그것을 알아차리자마자 속히 집으로 향했지요. 이렇게 외로운 곳에서 그저 죽도록 두는 것은 결코 원치 않았습니다.
방으로 들어가 급하게 아궁이에 불을 떼고, 그것을 방으로 옮겨왔습니다. 아직도 파들파들한 것이 곧 죽을듯 말듯 위태로워 보였습니다. 저는 그것을 다시금 품에 안고 무엇이 문제인지 관찰했습니다. 물론 추위도 추위였지만, 다친 듯한 다리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지요. 그것은 다리를 다쳐 멀리 날아가지도 못한 채, 이 허망한 눈밭 위에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마음이 아파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동시에 화도 났어요. 왜냐하면 그 상처는 누가 보아도 인간이 부러 잡아당긴듯 작위적인 형태를 띄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보아하니 마을의 못된 녀석들이 산 속을 헤집다 나무 위의 새카만 것이 미물이다 싶어 잡아당겼던 모양입니다. 대체 얼마나 우악스레 잡아당긴 것인지. 쉽게 나을 상처는 아니라고 판단된 저는 방구석에서 치료제를 찾아 다리를 고쳐주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아파할 힘도 없는지 겨우겨우 눈만 끔뻑일 뿐이었습니다. 다리를 고정시켜 줄 만한 천을 단단히 감아주니 어느새 따뜻한 바닥 위에서 잠이 들었더군요. 저는 그것이 빨리 낫기를 기대하며, 한참을 바라보다 어느 순간 스르르 잠에 들고 말았습니다.
아침에 눈이 떠진 것은 순전히 저의 의지만은 아니었습니다. 제가 돌아누운 등 뒤로, 더울 정도로 뜨거운 것이 바짝 붙어있었기 때문이었지요. 그것은 보지 않았더래도 사람의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깊은 산 속에 저 말고 인간이 어디있다는 말입니까. 저는 긴장으로 굳어진 몸을 아주 느리게 틀었습니다. 제 뒤에 대체 무엇이 붙은 것인지 봐야했지요. 정체를 아는 것이 우선이었으므로 고개를 가장 먼저 돌렸습니다. 너무 붙어있어 전체적인 것이 보이지는 않았습니다만, 아주 새카맣고 결 좋은 머리칼이 눈에 띄었습니다. 조금 고불거리는 제 머리에 비해 값 비싼 비단같이 매끄럽고 물결처럼 찰랑이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더 완전한 모습을 보기 위해 몸을 아예 틀었습니다. 그러면 제 옷자락을 살풋 잡은 채 색색거리며 잠든 소년 하나가 보였지요. 그 소년은 추운 듯 몸을 잔뜩 웅크리고 있었습니다. 그럴 만도 했어요. 왜냐하면 그 아이는, 아무 것도 걸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굳이 두른 것이 있다고 하면 허벅다리에 둘러진 천조각 밖에 없었어요. 거기서 저는 알아차렸습니다. 이 아이, 어젯 밤의 그 까마귀라는 것을요. 또 저와 같은 부류라는 것을요.
어제는 다리가 다쳤음에도 사람의 모습을 하지 못 하고 있었던 것을 보면 몸을 자유자제로 바꾸는 능력은 부족한 듯 보였습니다. 그것에 더 안쓰러워진 저는 제가 덮고 잤던 두툼한 이불을 조심스레 덮어주고, 이내 부엌으로 나왔습니다. 일어나면 그 아이가 곧바로 먹을 수 있게 따끈한 밥을 준비하기 위해서요. 또 이것저것 설명할 것도 많아 보였고, 당장에 입힐 옷도 구해다 주어야 했고……. 할 일이 순식간에 불었습니다. 밥을 짓는 동안 나물과 다른 밑반찬을 준비했지요. 그리고 속을 데워 줄 국도 끓이려 했습니다. 별안간 방에서 터져나온 울음소리만 아니었다면요. 저는 다급히 방으로 뛰쳐들어갔습니다. 아이가 앉은 채 서럽게 울고 있었어요.
"여긴, 대체 어, 딥니까……? 다리가 아파요, 다리가, 윽…… 너무 아파……."
아이는 다른 것 보다도 다리의 통증을 못 견뎌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 애의 앞에 급하게 앉아 이불을 걷어 다리를 보니 어제의 여파로 인해 퉁퉁 부어있었습니다. 저는 통성명을 하기도 전에 다시 부엌으로 뛰쳐나갔습니다. 찜질이 필요한 상황이었어요. 얼음을 사는 것은 저같은 산속에서 글이나 읽는 선비에게 있을 수 없는 것이었으므로, 급한대로 밖으로 나가 물이 언 것을 찾았습니다. 다듬어진 것은 아니었으나 어짜피 용도는 붓기를 가라앉히는 것이었기에 별 탈은 없어보였습니다.
저는 하얀 천에 얼음을 부서뜨려 넣고 주머니의 형태로 만든 뒤 입구를 노끈으로 단단히 묶었습니다. 그리곤 계속해서 아야, 하는 아이의 무릎에 조심스레 올렸지요. 차가운 기운에 다리를 파들 떠는 모습이 여과없이 드러났습니다. 아픔을 감추기 어려웠던 아이는 연신 통증을 호소하다 눈에 방울을 매단 채 간호 중인 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습니다. 겨울 늦저녁의 하늘같은 눈동자가 촉촉히 젖어있어 마음 한 구석이 동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습니다. 마치 평소의 제가 아닌 것처럼 들뜨게 만드는 무언가가 그 푸른 웅덩이에 존재했거든요. 저는 애써 눈을 피했습니다.
"많이 아프니."
"……."
"이름이 무엇이냐."
"카게야마…… 토비오."
"……토비오."
"좀, 참을 만 합니다."
소년은 파리한 입술을 살짝 문 채 대답했습니다. 그 모습이 기특해 칭찬의 의미로 머리를 쓸어주었죠. 소년은 저의 손길이 닿자 흠칫 떨더니 이내 유순한 표정으로 머리를 맡겼습니다. 너에게 줄 것이 많구나. 우선 밥부터 뜨자. 아이는 그 말에 조금은 들뜬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부엌으로 돌아가 끓이려던 국을 다시 준비하고, 작은 그릇마다 반찬들을 담아 상 위에 올렸습니다. 큼지막히 썬 두부와 기름이 유들유들 뿌려진 산채를 보고있자니 절로 입맛이 돋았지요. 이만하면 방에 있는 아이도 좋아할 것이라 기대하며 상을 안고 안으로 들자, 그가 반기는 모습이 눈에 보였습니다. 다리가 아픈데도 상을 받치겠다며 일어나길래 그저 앉아있으라 했어요. 그 애는 조금 미안한 듯 굴었지만 저는 아무렴 좋았습니다. 아픈 사람에게 바라는 것이라곤, 그저 빨리 나았으면 하는 것 뿐이었습니다. 저는 소년의 앞에 수저를 놓아주고, 그가 어서 맛나게 먹기를 기다렸지요. 그 애가 먼저 한 술 뜨고나서 저도 뜰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왜일까요, 아이는 침만 꿀떡꿀떡 삼킬 뿐 수저에 손도 대지 못했습니다. 왜 그러니. 물어보아도 고개만 도리도리 할 뿐, 말은 없었지요. 저는 이 애가 예의를 차리는 줄 알았습니다. 제가 먼저 먹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아까도 그 다리를 이끌고 상을 받치려 했으니, 충분히 그럴 만도 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가 불편하지 않게 하려고 결국 먼저 숟가락을 들었습니다. 보얀 쌀밥을 적당이 푸어서, 위에 나물을 올린 후 한 입 떠먹었지요. 역시나 그제서야 아이도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그것도 아주 서툰 솜씨로요.
그 애는 숟가락질 하나 유연치 못했습니다. 억지로 저를 따라 수저를 잡는 듯 했지만, 역시 어색했어요. 젓가락은 더더욱 힘겨워 보였고요. 그제서야 저는 알아차렸습니다. 이 아이는 한 번도 수저로 밥을 먹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요. 아마 평소에는 가마괴*로 지냈던 것 같았습니다. 부리로만 고기를 쪼아 먹는 동물이니, 그럴 만도 했어요. 저는 수저질도 수저질이지만, 그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제어' 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곳 섬나라에서 반인半人이란 사람에게 해를 가하는, 아주 위험한 존재로 여기고 있었거든요. 저 또한 그런 이유로 제가 반인인 사실을 죽어라 숨기고 살아왔었습니다. 그들은 3세기 전 반인 무리가 여러 마을을 잔뜩 들쑤시고 다녀 곳곳이 쑥대밭이었다는 과거의 기록에 근거하여, 다시는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반인이라 의심되는 자가 보이면 즉시 잡아들여 엄하게 다스렸습니다. 그 때문에 현재 남아있는 반인의 수는 얼마 되지 않았고, 그 얼마 안 되는 반인들조차 정체를 꽁꽁 숨기고 살아왔으니 저도 저의 동류를 보지 못한 지 오래였습니다.
그러나 이 아이만큼은 예외였나 봅니다. 어디서 버려지기라고 했던 것인지, 그런 일에 대해 완전히 무지해보였어요. 어제의 그 눈밭에서 아이를 발견한 사람이 제가 아니었다면 어땠을까요. 생각만으로도 끔찍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이에게 수저 쓰는 법을 직접 가르쳐 준 후 저를 따라오라 했습니다. 제어 방법을 가르쳐주기 위함이었지요. 아이는 서툰 솜씨로 밥을 삭삭 긁어먹은 뒤, 순순히 저를 따라 밖으로 나왔습니다. 여전히 밖은 거센 눈보라가 내리치고 있었어요. 그와 저는 처마 아래에 나란히 앉았습니다. 그리고 눈을 감겼지요.
"따라하거라."
"예."
"숨을 천천히 들이마시고, 또 천천히 뱉어내라. 너의 심장이 고르게 뛰기만 하면 된다."
"후우-"
"그리고 떠올리거라. 네가 가마괴였을 적에, 어떻게 보았는지, 어떻게 들었는지, 어떻게 느꼈는지를……."
"……."
"날개가 돋을 것이다. 그렇게 믿고 계속해서 생각을 반복하면 된다."
주위는 매서운 바람이 몰아치는 소리, 눈 덩어리가 처마 끝에 떨어져 부서지는 소리 등 자연의 소리만이 들려왔습니다. 토비오가 집중하기에 더없이 완벽했어요. 저는 그와 함께 눈을 감고 같이 기다려 준 뒤, 일정 시간이 지난 후 슬며시 눈을 떴습니다. 궁금했지요. 아마 그대로일 가능성이 가장 컸습니다. 처음으로 자의적인 통제를 하는 과정이었으니까요. 그러나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토비오의 새카만 날개가 도톰한 천을 찢고 나와 금방이라도 날아갈듯 펄럭이고있었기 때문입니다. 비록 다른 곳들은 사람의 모습 그대로였지만, 그래도 날개만큼은 완벽히 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지요. 저는 기특한 마음에 그 동그란 뒷통수를 찬찬히 쓸어주었습니다. 잘했다. 처음인 것 치고 놀라워. 계속해서 연습하면 더 쉬워질 거야. 작은 칭찬에도 그 애는 얼굴을 붉혔습니다. 연한 분홍빛 입술을 꾸물거리는 모습이 여간 귀여운 게 아니었습니다. 저는 무심코 그 입술을 건드리려다, 겨우 참았습니다.
그에게 다시 되돌아오는 방법까지 알려준 저는 곧 저자에 나갈 준비를 했습니다. 토비오의 품에 맞는 옷을 마련하기 위해서요. 아무래도 저의 옷은 이 애와 맞지 않았습니다. 누가 보아도 남의 옷을 입은 듯 헐렁해서, 어딜 갔다 괜히 의심을 살까 두려울 정도였으니까요. 그래서 나무에 걸 붉은 끈 몇 개와 엽전이 든 주머니, 옷 담을 보자기 정도만 챙겨 밖으로 나왔습니다. 다행히도 눈이 그나마 그쳐 있었습니다. 다시 쏟아지기 전에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에 발걸음이 빨라졌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얼마가지 못 해 멈춰야만 했지요. 왜냐하면 바로 뒤에서, 그 어린 소년이 절뚝거리는 다리로 저를 쫓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토비오!"
"따라가게 해주세요, 네?"
"다리가 성치 않잖니. 다 나을 때까지는 안에서 쉬어라."
"그치만…… 저자에 나가시는 것 아닙니까? 제 옷을 사러요."
직접 입어보고 싶습니다. 저도 저자에 나가보고 싶어요. 소년이 간절하게 부탁했습니다. 보아하니 끝까지 따라올 눈치였어요. 또 까마귀로 지내면서 말은 잘도 배운 모양인지, 자기가 원하는 것을 분명히 말하고 있었습니다. 아직 다 낫지 못한 다리를 끌면서까지 따라온 것을 보면 여간 간절한 게 아니었나 봅니다. 결국 저는 그 이상으로 뿌리치는 것을 그만두기로 했습니다. 사실 다리는 아주 빠른 속도로 나아가는 중이었거든요. 반인들의 특징이기도 했습니다. 너무 가둬두려고 했나 싶기도 했고.
"뒤에 잘 붙어서 따라와야 한다."
그 말에 토비오는 신이 난 듯 활짝 웃었습니다. 물을 주면 쉽게 만개하는 꽃과도 같은 미소는 아니었으나, 그의 기분은 그보다도 더 좋아보였습니다. 그리고는 제 뒤를 졸졸 따라오기 시작했어요. 저자에 꼭 나가보고 싶었어요. 그런데 마을 입구만 가도 어린 아이들이 흉하다며 겁을 주어서…… 한 번도 제대로 가본 적 없답니다. 토비오는 곁에서 자신이 여태 저자에 나가지 못한 이유를 조곤조곤 설명했습니다. 어느정도 예상은 했었지만 직접 들으니 더 마음이 안 좋았어요. 저는 그저 "그래, 그랬구나." 와 같은 대답만이 전부여서 미안하기도 했지요. 다행히도 토비오는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즐거워보였습니다. 앞으로는 마을에서 멸시 당할 일 없도록, 제가 도와야겠지요.
도착하자마자 제가 종종 찾는 원단집을 찾아갔습니다. 질 좋은 천을 양심적인 가격에 내다파는 몇 안 되는 곳이었어요. 산 속에 박혀 글이나 읽는 처지라 고급 비단을 사는 데에는 무리가 있었으나, 그래도 꽤 좋은 축에 속하는 원단을 골랐습니다. 맑은 옥색이 척 보아도 토비오에게 안성맞춤인 색이었어요. 그 외에도 짙은 곤색, 흰색, 자주색 등 몇 단을 골랐지요. 토비오의 기분도 퍽 좋아보였습니다.
그 다음으로 간 곳은 옷을 짓는 집이었습니다. 추운 날씨였지만 아낙들은 생계를 위해 꾸준히 일을 하고 있었습니디. 저는 그들에게 아까 산 원단들과 솜을 준 뒤, 겨울에 입을 만한 두루마기를 부탁했습니다. 그 동안 다른 아낙 하나는 토비오의 치수를 재고 있었고요. 그 애는 길이를 재는 가죽 끈이 어깻죽지와 허리 등에 닿자 잔뜩 얼어 뻣뻣하게 움직였습니다. 아마 이런 경험도 처음이었을 겁니다. 그렇게 옷도 부탁하고, 다른 곳에 가 소소한 장신구를 사니 배가 출출해졌습니다.
"배 고프지 않니?"
"네. ……뭐라도 먹고 싶어요."
다행히도 근처에 백반집이 하나 있었습니다. 작지만 손님들이 꽤 있었어요. 그곳에서 우리는 든든히 끼니를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토비오는 여전히 서투른 젓가락질로 콩자반을 집는 데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것 외에는 그럭저럭 잘 먹은 듯 했습니다. 불룩해진 배를 퉁퉁치는 모습이 즐거워 보였어요. 그렇게 그 날 하루는 금방 저물어갔습니다.
✝ ✝ ✝
제어를 위한 훈련은 매일같이 이어져왔습니다. 확실히 토비오도 처음에 비해 많이 능숙해져 있었고, 이제는 마음만 먹으면 완전히 가마괴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도 있었지요. 물론 반대도 마찬가지여서, 토비오는 자신이 원할 때면 줄곧 몸을 변형시켰습니다. 그 애는 제가 변하는 모습 또한 보고 싶다고 했지만, 그것은 거절했습니다. 저는 웬만하면 인간의 모습으로 있고 싶었어요. 완전한 인간을 동경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모습을 유지하지 않는다면, 언젠간 인간들에게 들킬 것이라 염려했어요. 자기 방어를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토비오에게도 너무 자주 몸을 변형시키지는 말라고 일어두었습니다. 그 애는 이제 막 능숙해진 능력을 다시 제어하라고 하니 아쉬운 반응이었으나, 금방 고개를 끄덕였어요. 아주 착했지요.
하지만 능숙해졌다고는 해도, 완전히 익힌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 때문에 저는 토비오가 혼자 산을 내려가지 못하게 미리 언질을 두었습니다. 가뜩이나 제어하는 데 있어 자신감이 높아진 상태라 무모하기에 가장 좋은 시기였지요. 그리고 저의 걱정은, 안타깝게도 현실이 되었습니다.
유난히 늦게 눈이 뜨인 어느 날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평소와 같았지만 단 하나가 달랐죠. 아니, 없었습니다. 제 등 뒤에 늘 느껴지던 따스한 기운이요. 저는 여전히 잠에서 덜 깬 눈으로 고개를 돌렸습니다. 제 곁엔 아침 먼지만이 날아다닐 뿐이었습니다. 그제서야 이상해진 기분에 자리에서 일어났어요. 토비오. 볼 일을 모러 집 밖에 나갔을 수도 있었습니다. 어쩌면 목이 말라 부엌에 갔을 수도요. 그러나 맨발로 집 안을 한참이나 헤매어도, 토비오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덜컥 불안감이 엄습했어요. 말은 안 했지만, 그 애, 늘 마을로 가고 싶어 했거든요. 그때부터 저는 급하게 옷을 주워입기 시작했습니다.
급한 발걸음으로 입구에 나가자, 밖은 눈 대신 얇은 빗줄기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습니다. 하늘이 맑지 않고 텁텁한 것이, 마치 저의 걱정을 보여주는 것만 같았습니다. 저는 비를 막을 생각도 없이 그대로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어요. 덕분에 옷이 상할 정도로 젖어들기 시작했지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죠. 토비오와 함께 저자에 나가면서 걸어뒀던 붉은 끈을 따라, 하염없이 내려갔습니다. 이 끈이 있으니 돌아오는 길은 어렵지 않았을 텐데, 제가 일어날 때까지도 소식이 감감하다니요. 그만 머리가 아득해졌습니다.
마을 입구에 도착하니 웬일인지 사람 하나 보이지 않았습니다. 다들 상은 차려둔 채로 어디론가 가버린 것인지, 그저 밥 냄새만이 마을을 채우고 있었어요. 저는 더 급해진 마음에 이제는 달리기까지 했습니다. 입구에서 저잣거리까지는 금방이었어요. 저는 금방 인파가 몰린 곳을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그곳에는 마치 마을 사람들은 죄다 몰린 듯이 바글바글댔지요. 원래 사람이 많은 시각이 아닌데도 불구하고요. 저는 그 틈을 비집고 어떻게든 중심을 향해 나아갔습니다.
"어유, 상스러워. 저런 망측한 것이 아직도 있었다니!"
"그러게나 말예요. 여태 우리를 속이고 다녔다는 거 아니겠어요?"
"흉측해라!"
사람들은 저마다 무언가에 대해 열띤 비난을 내뱉고 있었습니다. 인파의 중심에는 그저 사람들, 저, 그리고…… 익숙한 깃털이 몇 가닥 있었습니다. 깊은 밤하늘을 닮았던, 세상의 슬픔은 모두 끌어모은 듯 했던 그 새카만 날개 조각이요. 저는 정신 나간 사람처럼 주위의 아무나를 붙잡고 물었습니다. 여기서 무슨 일이 있었나요? 이 깃털들은 다 뭡니까? 이게 다 어떻게 된 거죠? 그러자 저의 광기에 겁에 질린 누군가가 답했습니다. 이곳에 반인이 왔다 갔어요. 아까 동네 아이들과 마주치더니, 갑자기 망측한 날개를……. 관군이 잡아가기는 했다지만, 얼마나 무서웠다고요! 이름 모를 이들의 치 떨리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나왔습니다.
"관군이라니요. 그럼 지금 어디로 갔단 말입니까!"
"고을 수령님께 붙잡혀갔죠. 흠씬 두들겨 맞고, 아주 사라져버려야 해요!"
저는 곧바로 달음박질 하여 마을의 수령이 거처하는 집으로 향했습니다. 성정이 고약하고 고리타분하기로 유명한 자였으니, 곧바로 사형을 지시하였을 것이 뻔했습니다. 조금이라도 늦었다간 화를 입는다. 오로지 그 생각만이 머리속을 가득 채웠습니다.
멀게만 느껴지던 길이었지만, 정신없이 달리다 보니 어느새 처소 앞이었습니다. 저는 주저없이 들어서려 했고, 아주 당연하게도 문지기가 앞을 막아왔습니다. 누구십니까. 지금 안에서 중요한 일을 처리하고 있사오니……. 얼마전까지 참의參議로 있었던 아카아시 家의 사람입니다. 수령과 긴히 할 이야기가 있으니 당장 문을 여세요. 그들은 정3품의 품계 이름을 듣고는 화들짝 놀라 급히 몸을 피했습니다. 몰라뵈었습니다. 굵직한 목소리가 귓전을 울렸습니다만, 저는 그것을 들어줄 시간 같은 것은 없었습니다. 그대로 문을 박차고 안으로 들어섰지요.
그러면 대청에 옮겨 놓은 의자에 앉아 마당 한 가운데 쓰러지듯 앉아있는 아이를 심문하는 수령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토비오는 얼마나 맞은 것인지, 얼굴이 퉁퉁 부어 죽은 사람마냥 축 처져 있었습니다. 제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들어오자 수령은 매우 당황하고 화가 난 표정으로 저를 노려보았지요.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한 것이, 금방이라도 터질 것만 같았습니다. 자신의 일을 방해한 것에 대한 분노였습니다. 마음같아서는 그 역겨운 얼굴을 외면하고 위태로운 토비오에게 어서 달려가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했습니다. 대신 고개를 숙여 인사를 대신했지요.
"나으리께서는 얼마 전 물러나신 아카아시 家의 참의 아니십니까. 중요한 일을 이 사단으로 만드시다니요!"
"안 된 말씀이지만, 이 아이는 제가 데려가겠습니다."
"무어라 하셨습니까? 이 미물을요! 방금 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십니까. 마을 사람들이 다 모인 길 한 복판에서 감히 날개를 드러낸 놈입니다. 이런 반인을 마땅히 사형시키는 것이 제 도리……!"
"……감히."
'감히', 라 하셨습니까. 저는 저 또한 자제력을 잃어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어째서였을까요. 그토록 감정을 제어하고, 반인인 사실을 끔찍이 숨겨왔던 제가. 토비오를 두고 하찮은 미물이라 칭하는 그 수령의 입을 찢고 싶어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가슴 속 깊숙이에서부터 뜨거운 덩어리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저렇게 순한 아이를, 저렇게 어여쁜 아이를 두고, 감히 날개를 드러냈다고 저다지도 때리다니요. 점점 '화'라는 것이 이성을 잠식해가고 있었습니다. 곤장을 불러와, 수령의 사타구니가 아닌 안면을 해하라 명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수령은 그것도 모른 채 계속해서 떠들어댔습니다.
"설마, 전 참의께서 이 놈을 보살피고 계셨던 것은 아니시겠지요.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알아두십시오. 이 놈은 그저 짐승에 불과합니다!"
"그렇게 안 뵈었사온데, 사또께서도 참으로 어리석습니다. 근 100년 간 반인이 인계에 추태를 부린 적이 있었던가요. 지금 당장 저 아이를 놓아주시지 않는다면, 제가 알아서 데려가겠습니다."
"가긴 어딜 간단 말이오! 여봐라, 어서 저 놈들을……!"
그 순간 저의 손이 움직인 것은 거의 반사적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저는 옆에 서 있던 관군의 칼을 뽑아 공중으로 띄운 뒤, 수령과 그곳에 있던 다른 인간들이 놀란 틈을 타 그대로 수령의 가슴께로 날려보냈습니다. 칼은 그대로 수령의 심장에 콱 꽂아 박혔고, 누군가 빼기도 전에 수령의 고개가 그만 툭 꺾였습니다.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숨을 죽였습니다. 가슴에 박힌 칼의 양 옆으로 진붉은 것이 스물스물 퍼져나갔습니다. 그리고 칼자루를 따라 진득한 액체가 맺히기 시작하더니, 이내 뚝. 뚝. 떨어졌습니다. 저는 그가 확실히 죽었음을 인지하자마자 토비오에게로 달려갔습니다. 소년은 제가 본 첫날보다 더 위태로운 얼굴로, 미동도 없이 고개를 떨구고 있었습니다. 인중에다 손을 갖다대니 아주 미약한 바람이 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었다면 정말로 죽었다 볼 수도 있었어요. 저는 벅차오르는 슬픔에 그 애를 조심스레 끌어안았습니다. 마음같아서는 힘껏 끌어안고 연신 미안하다 머리를 쓰다듬고 싶었지만……. 그것마저도 아파할 것만 같았습니다. 세게 깨문 잇새로 울음이 비져나왔습니다. 혹여나 토비오가 놀랄까봐, 크게 소리를 내지도 못했습니다. 그저 답답하게 끅끅댔어요. 그러나 흐르는 눈물만큼은 어찌할 수 없었던 모양입니다. 그것은 흘러흘러 토비오의 이마에, 볼에, 턱에 떨어졌으며, 토비오는 그것도 느끼지 못한 채 마냥 눈을 감고 있었습니다.
저는 소매 끝으로 대신 토비오의 얼굴에 붙은 제 눈물을 닦아주었습니다. 그리고 품에 안아 들어올렸습니다. 다른 이들은 숨을 죽인 채 우리를 바라보았고, 그 누구도 입을 떼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마을에서 영영 사라졌습니다. 그 산에서 살아졌고요. 둘이서, 아주 멀리로 떠나왔습니다. 다시는 인간과 엮일 일 없는 곳으로요. 다른 것은 아무래도 좋았습니다. 저는 토비오만 있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했고, 토비오 또한 마찬가지였으니까요.
*까마귀의 옛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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